zzominzzomin.tumblr.com

Monologue
Tags ()

    오늘도 어김없이 오빠한테 편지를 쓴다.

    열심히 찾아 헤메다 발견한 좋은 시 하나도 곁들였다.

    오늘 편지는 꽤 잘 쓴것 같다. 뿌듯하다.

    편지 내용은 날씨, 가을, 연말, 지난 겨울에 다녀온 유럽여행, 그리고 거기서 듣고 읽은 음악과 책.


    날씨가 쌀쌀해지는게 느껴진다. 어제는 간만에 한번도 안깨고 푹 잤어. 열어둔 창문으로 드나드는 바람이 정말 차서, 긴 소매 옷 입고 오빠 침대에서 이불 꽁꽁 둘러 싸메고(오빠 이불이 아직도 솜이불이더라고) 잠깐 누워있는다는게 잠들어버렸지 뭐야. 창문을 닫으면 됐지만 그냥 간만에 느끼는 찬 기운이 너무 좋아서 다 열어 제끼고 있었어.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다가오니 기분이 붕 떠. 매년 나는 여름이 끝나면 그 해가 거의 마무리되는 느낌이랄까. 9월부터 12월까지는 훅훅 지나가버리는거 같아서. 아직 연말은 멀었는데 이미 스스로 올 해를 정리하고 있어. (좋다는 말이야) 그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까 지난 겨울에 유럽 여행 갔던 기억이 막 떠올라. 그래서 어제는 여행 동안 읽었던 책, 다니면서 사서 들었던 CD를 꺼냈어. 참 좋더라. 그 때 정호승 시인의 ‘여행'이라는 시집을 들고가서 기차에서 읽곤 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맘에 드는 시 한 편을 옮겨본다. PS 지금도 딱히 다이어트는 안되고 있지만 어서 오빠랑 치킨 족발 맛있는거 먹고 싶다!:) 


    그네 (정호승)

     너도 그네를 타보면 알 거야/ 

    사랑을 위해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네가 수평을 유지해본 적이 없어/ 한없이 슬펐다는 것을// 


    오늘은 빈 그네를 힘껏 밀어보아라/ 

    그네가 결국 중심을 잡고/ 

    고요히 수평의 자세를 갖추지 않느냐/ 

    너도 너의 가난한 사랑을 위해/ 

    수평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진실해라// 


    너는 한때 좌우로 혹은 위아래로/

     흔들리지 않으면 그네가 아니라고/

     더 높이 떠올라 산을 넘어가야 한다고/

     마치 손이라도 놓을 듯 그네를 탔으나/ 

    결국 그네는 내려와 수평의 자세를 잡지 않더냐// 


    사랑한다는 것은 늘 그네를 타는 일이므로/ 

    부디 그네에서 뛰어내리지는 마라/ 

    “April is the cruelest month”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거짓말 같던 사월의 첫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왠지 나만 여기 혼자 남아
    가야할 곳을 모르고 있네

    떠들썩하던 새로운 계절
    그 기분이 가실 때 쯤 깨달을 수 있었지
    약속된 시간이 끝난 뒤엔
    누구도 갈 곳을 알려주지 않는걸

    나 뭔가 있을거라 생각햇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의 지금은
    깊어만 가는 잔인한 계절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가슴설레기엔 나이를 먹은
    아이들에겐 갈 곳이 없어

    봄빛은 푸른데

    T.S Eliot, 브로콜리너마저 ‘잔인한4월’

    일기장.

    일기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글 쓰는것을 정말로 힘들어하고, 못 견디고, 싫어하지만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이 여러가지 매체로 남겨졌으면 한다.

    소리, 사진, 영상, 작업, 그림, 글…

    그래서 일기장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손으로 글씨를 쓰는걸 좋아한다.

    그래서 사실 예쁜 일기장을 마련할까 했다.

    하얀 종이에 사각사각 연필로 미끄러지는 볼펜으로

    글을 써나가는 것

    그런 아날로그가 좋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무게가 있다. 

    가끔은 아날로그의 무게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쉽사리 글을 남기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새 계정을 만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게

    아무도 신경쓰지 않게

    그 어떤 매체보다도 가볍게

    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